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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조절하지 않고 감각을 조절한 결과

📑 목차

    우리는 기술을 너무 빨리 받아들였고, 그 속도를 감당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일상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기술의 사용 시간을 제한하기보다 알림을 무시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플랫폼이 과잉 정보를 쏟아내기 시작했을 때 사회는 기술의 구조를 바꾸기보다 개인의 집중력을 문제 삼았다. 결국 우리는 기술을 조절하지 않는 대신, 감각을 조절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덜 느끼고, 덜 반응하고, 덜 몰입하는 쪽으로 자신을 훈련했다. 처음에는 이것이 적응처럼 보였다. 피로를 줄이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고, 과부하를 견디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각을 조절한다는 것은 단순한 적응을 넘어,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일이 되었다. 기술은 점점 더 예민해지고 정교해졌지만, 인간의 감각은 점점 둔해졌다. 이 글은 기술을 통제하지 못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감각을 스스로 낮추게 되었는지, 그 결과 개인의 내면과 사회의 정서 구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따라가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기술을 조절하지 않고 감각을 조절한 결과

    1. 과잉 기술 환경 속에서 감각은 왜 먼저 무뎌졌는가

    기술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감각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화면은 항상 켜져 있고, 소리는 멈추지 않으며, 정보는 쉬지 않고 흘러든다. 이런 환경에서 인간의 감각은 본능적으로 방어 기제를 작동시킨다. 모든 자극에 반응할 수 없기 때문에, 뇌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감각을 차단한다. 문제는 이 차단이 선택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술이 제공하는 자극은 점점 더 강해지고 빈번해지는데, 이를 제어할 장치는 개인에게 맡겨졌다. 사회는 기술 사용의 기준을 세우기보다 “각자 잘 조절하라”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기술을 멀리하기보다, 자신이 느끼는 감각의 강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적응했다. 놀라운 일에도 무덤덤해지고, 불편한 일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감각을 무디게 하는 것은 즉각적인 피로를 줄여주지만, 동시에 세계를 세밀하게 느낄 능력을 약화시킨다. 기술 환경에 맞추기 위해 감각을 줄이는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이었으나, 장기적으로는 인간의 감수성을 소모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과잉 자극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기술의 흐름을 늦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그 흐름에 맞출 것인가. 대부분의 사회는 후자를 택했다. 기술 발전은 개인이 거부하기에는 너무 거대했고, 제도적으로 통제하기에는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감각을 줄이는 방식으로 적응했다. 알림을 하나하나 느끼지 않고, 소음 속에서도 집중하려 애쓰며, 정보의 홍수 앞에서 무심해지는 법을 배웠다. 이 무심함은 처음에는 능력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반복될수록 감각의 둔화는 선택이 아닌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성격처럼 굳어졌다.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쉽게 놀라지 않고, 불편해도 그냥 넘기는 태도는 사회에서 ‘적응 잘하는 사람’의 표식이 되었다. 그러나 감각이 무뎌진다는 것은 단지 피로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세밀하게 읽어내는 능력을 잃어가는 과정이었다. 기술의 과잉은 감각의 절약을 요구했고, 인간은 그 요구에 너무 성실하게 응답해 버렸다.


    2. 감각을 조절하는 능력이 ‘성숙함’으로 오해되다

    감각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는 어느 순간부터 성숙함의 기준이 되었다. 쉽게 놀라지 않고, 쉽게 상처받지 않으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어른스럽다고 평가받았다. 기술 환경은 이러한 인식을 더욱 강화했다. 감정적인 반응은 댓글과 데이터로 수집되어 확산되고, 통제되지 않는 감각은 ‘피곤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감각을 스스로 검열하게 되었다. 너무 기뻐하지 않고, 너무 슬퍼하지 않으며, 분노조차 내부에서 처리하려 한다. 이것은 감정 조절이 아니라 감각 억제에 가깝다. 기술은 끊임없이 반응을 요구하지만, 그 반응은 일정한 형식 안에서만 허용된다. 좋아요, 공감 버튼, 짧은 문장 같은 제한된 감정 표현만 남고, 복잡한 감각은 설 자리를 잃는다. 이렇게 감각을 줄이는 태도는 사회적으로 칭찬받지만, 개인의 내면에서는 점점 감정의 언어가 사라진다.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불편한지 명확히 느끼지 못하게 되면서, 삶에 대한 판단 기준도 흐려진다. 성숙함으로 포장된 감각 억제는 사실상 기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자기 축소였다. 감각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는 점점 미덕으로 포장되었다. 쉽게 흔들리지 않고,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며,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개인상에 가까웠다. 특히 기술 중심 사회에서는 감정의 진폭이 클수록 관리하기 어려운 요소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훈련했다. 너무 기쁘지도, 너무 불편해하지도 않는 상태를 유지하려 애썼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감정의 깊이까지 함께 억제되었다는 점이다. 감각을 조절한다는 명목 아래, 사람들은 자신의 반응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검열했다. 이 검열은 외부에서 강요된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내면화된 규칙이었다. 감각을 줄이는 것이 성숙함이라 믿게 된 사회에서는, 오히려 솔직한 반응이 미성숙으로 오해된다. 하지만 감각은 인간이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다. 그 통로를 좁히는 성숙함은 사실 자기 보호를 가장한 자기 단절에 가깝다.


    3. 둔감해진 감각이 만든 관계의 변화

    감각을 조절하는 방식은 인간관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태도는 갈등을 줄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관계의 밀도를 낮췄다. 상대의 감정을 깊이 느끼지 않으니 공감도 얕아졌고, 공감이 얕아지니 관계는 기능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기술은 빠른 소통을 가능하게 했지만, 감각이 둔해진 상태에서는 그 소통이 깊어지지 않는다. 메시지는 오가지만 마음은 닿지 않는다. 사람들은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감각을 닫았고, 그 결과 위로를 주고받는 능력도 함께 약화되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느끼는 것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고, 둔감해진 감각은 그 에너지를 절약하게 해 준다. 하지만 그 절약은 관계의 온기를 잃는 대가를 요구한다. 기술은 계속 연결을 확장하지만, 감각이 줄어든 인간은 그 연결을 유지할 힘을 갖지 못한다. 결국 관계는 많아졌지만 고립감은 더 깊어졌고, 이는 다시 감각을 더 낮추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감각이 둔해지면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안정되어 보인다. 불필요한 갈등이 줄고, 감정적 충돌도 감소한다. 하지만 그 안정은 깊이를 대가로 얻어진 것이다. 상대의 말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동시에 그 말이 마음 깊숙이 닿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술은 관계를 빠르게 이어주지만, 감각이 닫힌 상태에서는 그 연결이 얕은 수준에 머문다. 사람들은 관계에서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감각을 낮추었고, 그 결과 위로를 받을 기회도 스스로 차단했다. 위로는 감각을 열어두어야 가능한데, 열린 감각은 다시 상처의 가능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된 관계는 안전하지만 차갑다. 서로를 존중하지만 깊이 이해하지는 않는다. 감각을 줄인 선택은 관계의 리스크를 낮췄지만, 동시에 관계가 주는 회복력도 함께 약화시켰다.


    4. 감각을 낮춘 사회가 치르는 보이지 않는 비용

    기술을 조절하지 않고 감각을 조절한 사회는 겉보기에는 효율적이다. 사람들은 빠르게 적응하고, 자극에 흔들리지 않으며, 과도한 감정 소모를 피한다. 하지만 이 효율성 뒤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쌓인다. 감각이 둔해지면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도 함께 약해진다. 과로, 불안, 우울 같은 문제는 임계점을 넘어서야 비로소 인식된다. 또한 즐거움 역시 강한 자극이 아니면 느끼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사회는 점점 더 자극적인 콘텐츠와 경험을 요구하게 되고, 기술은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욱 극단적인 방향으로 발전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다시 한번 감각을 낮추며 버텨야 한다. 감각을 조절하는 선택은 결국 인간이 기술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구조를 고착화시킨다. 만약 우리가 이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면, 미래의 문제는 기술 중독이 아니라 감각 상실이 될지도 모른다. 기술을 다시 조절의 대상으로 되돌리지 않는 한, 인간은 계속해서 덜 느끼는 존재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감각을 낮춘 사회는 당장의 효율을 얻었지만, 장기적인 비용을 외면했다. 감각이 둔해질수록 개인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기 어려워진다. 피곤함, 불안, 무력감 같은 신호를 초기에 감지하지 못하고, 문제가 심각해진 뒤에야 알아차린다. 이는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감각이 살아 있는 사회는 작은 균열을 빨리 발견하지만, 감각이 둔한 사회는 큰 사고가 나야 문제를 인식한다. 또한 즐거움의 기준도 왜곡된다. 미세한 기쁨에 반응하지 못하니,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게 된다. 그 결과 기술은 더욱 자극적으로 진화하고, 인간은 다시 감각을 낮추는 악순환에 빠진다. 기술을 조절하지 않고 감각을 조절한 선택은 결국 인간이 감당해야 할 비용을 미래로 미뤄놓은 셈이다. 이 비용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삶의 질을 잠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