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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은 많은데 하루가 비어 있는 느낌의 원인

📑 목차

     

    왜 이렇게 바쁜데도 허무할까: 계획은 많은데 하루가 비어 있는 느낌의 원인

     

    오늘 해야 할 일은 분명 많았다. 일정표에는 빼곡히 계획이 적혀 있었고, 머릿속에서도 해야 할 일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런데 하루가 끝나고 나면 이상한 감정이 남는다. 분명 무언가를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 하루가 통째로 빠져나간 듯한 공허함. 이것이 바로 많은 현대인이 느끼는 ‘계획은 많은데 하루가 비어 있는 느낌’이다. 이 감정은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열심히 살고 있다는 사람일수록 더 자주 경험한다. 문제는 계획의 양이 아니라, 하루를 채우는 방식과 감정을 인식하는 구조에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쁜데도 만족하지 못하는지, 왜 하루가 지나간 뒤 허탈함만 남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다. 대신 더 많은 계획을 세우고, 더 촘촘한 일정으로 하루를 채우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공허함은 더 짙어진다. 이 글은 계획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비어 있다고 느끼는 근본적인 원인을 차분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내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계획은 많은데 하루가 비어 있는 느낌의 원인

    1. 계획이 많아질수록 하루가 사라지는 이유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원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행위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계획은 대비가 아니라 통제의 도구가 되었다. 해야 할 일을 미리 정리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빈 시간이 생기면 실패한 하루처럼 느낀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과잉계획이다. 과잉계획은 하루를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문제는 계획이 많아질수록 하루를 실제로 경험하는 시간은 줄어든다는 점이다. 우리는 현재를 사는 대신, 다음 할 일을 준비하며 하루를 보낸다. 한 가지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은 이미 다음 일정으로 이동해 있다. 이렇게 되면 하루는 잘게 쪼개진 체크리스트의 집합이 되고, 하나의 흐름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기억되지 않는 하루는 감정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하루가 끝났을 때 남는 것은 성취감이 아니라 공백이다. 과잉계획은 하루를 채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루의 밀도를 낮춘다. 계획은 많았지만, 그 안에서 나 자신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잉계획의 가장 큰 문제는 계획이 실제 삶을 돕지 못하고 오히려 삶을 압도한다는 데 있다. 계획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기보다 ‘놓치면 안 되는 일정’을 감시하는 사람이 된다. 하루를 시작하자마자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의 목록이 떠오르고, 그 목록을 얼마나 소화했는지가 하루의 가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렇게 체크리스트 중심으로 흘러간 하루는 감각이 개입할 틈이 없다. 무엇을 느꼈는지, 왜 그 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완료 여부만 남는다. 문제는 인간의 기억과 만족감이 완료가 아니라 맥락에서 형성된다는 점이다. 과잉계획 속에서 하루는 단절된 조각들의 나열이 되고, 조각은 흐름을 만들지 못한다. 흐름이 없는 하루는 정리되지 않고, 정리되지 않은 하루는 ‘비어 있는 느낌’으로 남는다. 우리는 계획을 세울수록 안심하지만, 그 안심은 하루가 끝난 뒤 공허함으로 되돌아온다. 과잉계획은 하루를 통제하는 대신, 하루를 경험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적 원인이 된다.


    2. 계획하고 해야 할 일은 많지만 하고 싶은 일은 없는 상태

    계획이 많아도 하루가 비어 있다고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그 계획들이 나의 내적동기에서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맞춰 계획을 세운다. 생산적인 사람, 성실한 사람,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목록에 올린다. 하지만 그 계획들 중 상당수는 ‘해야 하니까’ 존재한다. 하고 싶은 마음보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이 앞선다. 이때 하루는 의무의 연속이 된다. 의무는 수행할 수는 있지만, 만족을 주지 않는다. 내적동기가 결여된 활동은 에너지를 소모할 뿐, 감정을 채워주지 않는다. 그래서 하루 종일 움직였는데도 마음은 비어 있는 상태로 남는다. 반대로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스스로 원해서 한 일은 하루의 인상을 바꾼다. 문제는 우리는 점점 그런 시간을 계획에서 밀어낸다는 점이다. 효율과 성과를 기준으로 하루를 구성하면서, 내적동기는 사치처럼 취급된다. 결국 하루는 외부 기준으로만 채워지고, 내부 감정은 방치된다. 이 불균형이 반복될수록 하루는 점점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내적동기가 빠진 하루는 외형적으로는 꽉 차 있지만, 내부에서는 텅 빈 상태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을 수행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다”, “나태해지지 않았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런 자기 확인은 오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적동기 없는 행동은 에너지를 보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에너지를 빼앗는다. 하루가 끝날수록 더 지치고, 더 허무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고 싶은 일은 미루고, 해야 할 일만 반복하면 삶은 점점 타인의 요구에 의해 구성된다. 이때 사람은 자신의 하루에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가 된다. 관리자는 책임은 있지만 만족은 없다. 내적동기는 대단한 목표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짧은 산책, 의미 없는 낙서, 아무 성과 없는 독서처럼 작아 보이는 선택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시간을 비생산적이라고 판단해 계획에서 삭제한다. 그 결과 하루는 효율적이지만 살아 있는 느낌은 사라진다. 내적동기가 빠진 계획은 하루를 채우지만, 삶을 채우지는 못한다.


    3. 계획적인 디지털 환경이 만든 분절된 하루

    하루가 비어 있는 느낌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주의력의 문제일 수 있다. 우리는 하루를 온전히 한 가지에 쓰는 시간이 거의 없다. 스마트폰 알림, 메신저, SNS, 뉴스, 영상 콘텐츠는 우리의 주의를 끊임없이 분산시킨다. 이 상태를 주의력분산이라고 한다. 주의력이 분산되면 시간은 잘게 쪼개지고, 경험은 깊이를 잃는다.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하루가 되는 이유다. 우리는 분명 많은 일을 했지만, 하나도 제대로 몰입하지 못했다. 몰입 없는 활동은 기억에 남지 않고, 기억에 남지 않는 하루는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디지털 환경은 이 과정을 더욱 가속화한다. 잠깐 쉬는 시간조차 화면으로 채워지고, 생각이 머무를 틈은 사라진다. 생각이 머물지 않는 하루는 정리되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은 하루는 의미를 만들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하루를 살았지만, 하루를 느끼지 못한 채 지나간다. 이때 느껴지는 공허함은 휴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집중과 연결이 부족해서 생긴다.

    주의력분산 상태에서 보낸 하루는 마치 여러 개의 창을 동시에 띄운 채 아무 것도 완전히 보지 못한 것과 같다. 우리는 멀티태스킹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맥락을 잃고 있다. 메시지를 확인하다가 일을 하고, 일을 하다가 영상을 보고, 영상을 보다가 다시 메시지로 돌아간다. 이 반복 속에서 시간은 흐르지만, 경험은 축적되지 않는다. 주의력이 분산되면 감정도 얕아진다. 기쁨도, 피로도, 만족도 모두 표면에서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하루가 끝나면 “뭘 했지?”라는 질문만 남는다. 디지털 환경은 쉬는 시간마저 채운다. 가만히 있는 시간, 생각이 흘러가는 시간이 사라지면서 하루를 정리할 여백도 없어졌다. 여백 없는 하루는 기억을 만들지 못하고, 기억 없는 하루는 공허함으로 인식된다. 주의력분산은 단순한 집중력 저하가 아니라, 하루를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다.


    4. 계획과 감정이 기록되지 않은 하루의 공허함

    하루가 비어 있다고 느끼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 하루에 감정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하려 하지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돌아보지 않는다. 감정이 기록되지 않은 하루는 숫자만 남은 일정표처럼 느껴진다. 이때 필요한 것이 감정회고다. 감정회고란 하루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의 감정을 인식하고 정리하는 과정이다. 잘한 일, 못한 일을 따지기보다 어떤 순간에 기뻤고, 언제 지쳤으며,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이 과정이 없으면 하루는 단순한 소모로 끝난다. 감정회고가 없는 삶은 계속 앞으로만 달리지만, 어디에 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계획은 늘어나지만 방향 감각은 사라진다. 하루가 비어 있다는 느낌은 사실 감정이 누적되지 않았다는 신호다. 우리가 하루를 채워야 할 것은 일정이 아니라, 감정의 흔적이다. 작은 만족, 짧은 휴식, 의미 없는 시간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감정으로 남을 때 하루는 비어 있지 않게 된다.

    감정회고가 없는 삶에서는 하루가 계속 초기화된다. 어제의 감정이 오늘로 이어지지 않고, 오늘의 감정은 내일로 남지 않는다. 우리는 하루를 반복해서 살지만, 누적해서 살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살아온 느낌’이 쌓이지 않는다. 감정회고는 거창한 자기 성찰이 아니다. 단 몇 분이라도 오늘 가장 피곤했던 순간, 가장 편안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 과정이 없으면 하루는 단순한 소모로 끝난다. 감정은 의미를 만드는 재료인데, 우리는 그 재료를 버리고 결과만 세려 한다. 그러다 보니 하루는 숫자와 일정만 남고, 감정은 공백이 된다. 하루가 비어 있는 느낌은 사실 감정이 사라졌다는 신호다. 감정회고를 통해 하루를 되돌아보면, 완벽하지 않아도 하루는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쌓일 때 비로소 하루는 비어 있지 않게 된다.